둥글레123 2007. 12. 17. 22:36
 

어젠 황사 현상으로 희부옇게 내려앉은 대지가, 오늘은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맑은 하늘이 우리를 유혹한다.

도시락을 챙겨 들고 몇몇 산을 좋아하는 자칭 미녀들과 함께 동대뒷산을 올랐다.

담넘어 목련의 아름다움에 시샘도 하며, 2층 벽돌집의 행복소리에 귀쫑긋, 눈흘기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텃밭에 뽀죡 내민 푸성귀에 맛있겠다 군침도 흘려 가며, 그렇게 우린 씩씩하게 나아간다.

보도 블록 틈새 용케도 자라난 민들레에 호들갑스레 감탄소리 요란하다.

쭉쭉 뻗은 신작로길 시끄런 자동차 소리도, 우리의 웃음소리에 꼬리를 내린다.

다리 난간위에서 내려다 본 냇물, 한소움큼 따서 먹고픈 물풀이 물여울에 흔들린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 ?

벌써 작년이다. 이맘때,(3월 31일 금요일)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출근과 함께 느긋한 여유를 갖을 찰라,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잔잔한 평화로움을 뒤흔드는 소식이었다.

학교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2층에서 떨어져 다쳤단다.

정신 없이 뛰어간 병원엔, 나를 보고 미안한듯 희죽이 웃는 덩치 큰 아들이 길게 누워 있었다. 제발......조금만 다쳤기를...... 타박상만 입고 멍이 들 정도이기를......

애절히 바라는 마음 간데 없이 검사 시간은  왜 그리 더디던지...

“척추 2대가 뿌려졌습니다.”

무섭게도 매정하게도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세상이 뒤집혔다. 깜깜했다.

정신이 들자, 경망스럽게도 내 머리 속엔 휄체어가 지나가고 아들의 앞날이 휙휙 지나갔다..

바보처럼 시키는 대로 입원실로 올라가서, 미동도 하지 말라는 아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무능력과 무기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난, 주님께 매달려 보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는 아예 없었다.  희망은  주님의 사랑에 호소하며 자비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가고..... 경과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천만 다행으로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고, 뼈도 어긋나지 않아 그대로 붙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있다. 내년엔 군대에 오라고 신체검사 통지서도 나와 있다. 분명  고통 뒤엔 은총이 있었다.

우리가정이 성가정이 되었고, 또 나의 욕심이 많이 없어 졌다는 것, 건강이 제일임을 깨닫았다는 것, 인간이 얼마나 미약하고 하잘 것 없다는 것을, 간절한 기도는 주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그리고 힘들 땐 주위에 고마운 교우들이 함께 기도해 주고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이렇게 깨닫게 되자, 나날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이름 모를 한송이 들꽃도 예쁘게 보이고, 새  지저귀는 소리도 아름답다 .

모르고 살아온 소중한 것들이,

경험해 본 후에 알게 되는 미련함을 깨닫고 뉘우치고 알게 해준 기회인 것이었다.

온전히 나를 비운 후 주님께 의지 할 때  분명 채워 주셨다.

또 다른 기쁨과 또 다른 삶으로.....

비움으로 채워 주시고, 죽임으로써 새 삶의 용기를 주시는 것이었다.

이 생동으로 충만한 계절을 아름답게 느낄수 있는 마음을 주신  우리 주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수 있을까?

나약하고 미련한 저희에게 지혜 주시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용기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