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베란다의 빨래를 걷다가 바라본 서산 노을,
아파트 빌딩 사이로 바라본 석양에 생각은 옛 시절로 돌아간다.
이맘때 쯤이면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내 고향은 푸른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벌판은 모내기로
바뀌어 있을까?
읍내가 10리쯤 떨어져 있어 늘, 등 하교 길은 걸어서 다녔다.
포장도 안된 길이었기에 비만 오고 나면,패인 웅덩이엔 하늘의 뭉게 구름이 말갛게 떠 있곤 했다.
날이 갠후 고인 빗물에 비추인 구름들을 본적이 있는가?
물끄럼이 몽상에 젖어 있다가, 멀리서 트럭이라도 올라치면 황급히 나무 뒤로 숨어야 했다.
무지막지 달리는 차 바퀴는 물속의 뭉게 구름도 사정없이 지워버리지만.
곱게 다려 입은 하얀 교복 마져도 흙탕물로 뒤집어 씌우기 일쑤였으니까...
꿈 많던 학창 시절
그 먼 십리길은 자연과 친해지는 순간들이었다.
길옆으로 흐르는 도랑엔 각가지 풀꽃과
물결 거슬려 헤엄치는 개구리,이름 모를 물 벌레, 그리고 심지어 도마뱀마져도 우리의 친구였었다.
간혹 늦은 하교길에는 저렇게 아름 다운 노을 속에서 걷기도 했었다.
새들도 둥지를 찾아 날아든 조용한 때,
집집마다 피어 오르는 굴뚝의 하얀 연기...
사방이 정적으로 깃든 조용한 시골길에 솟아 오르는 연기는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싸아하게 가슴밑바닥으로 부터 이름 모를 아픔이 밀려 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시간 ,
고향 산천의 산과 물은 그대로 이나 , 나 반겨 줄 이 없으니...
모두가 떠나 버린 고향...
도시로 떠나 버린 사람들....
그래도 추억속의 내 고향은 정겹기만 하는데... 몇해전 다녀온 고향은 낯설었다.
벽돌집으로 변해 버린 나즈막한 굴뚝의 기와집들....
포장으로 숨조차 못쉴 움푹패였던 도로들.....
단발 머리숨겨 주던 그 고목들은 그루터기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젠 아스라히 기억속의 한 모퉁에 남겨졌을 뿐이다.
곱게 물든 저녁 노을
그 옛날 처럼 오늘도 그리고 먼 훗날에도 저렇게 아름답게 빛내리라.
어느날 문득 나를 닮은 어떤 이가 저모습을 보고 그리워 하듯, 그렇게 그리워 하며 세월은 흘러가리라.
헛되도다, 헛되도다.
아둥바둥 사는 삶이 헛되도다.
초연히 조용히 그리고 '나를 닮아 거룩하게 살라' 하신 주님의 말씀 처럼 거룩히 살고 싶다.